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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수 교수, 박현숙 장학금’ 4천만 원 기부

  • 전자과
  • 2020-09-24
  • 1459


 



[사진: 김은수 명예교수]

 




지난 8월 우리 학과 김은수 교수가 퇴직을 앞두고, 학과 발전을 위해 박현숙 장학금’ 4천만 원 기부하였다.


김은수 교수는 이번 장학금 기부와 함께, "우리 전자과 학생들이 세계를 품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항상 열심히 그리고 과감하게 도전하여 미래세계를 정복하는 우리 제자들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사 하였다.


또한, "특히, 온라인 강의, 재택근무, 온라인 학술대회 등 코로나 사태로 과거에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현실화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학, 기업, 경제, 사회 전반에 불어 닥칠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 슬기롭게 대응하고 준비해서 불확실한 미래사회에서 모두가 성공하는 강한 제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라고 당부 하였다.


"40년의 제 인생 전부를 광운대와 함께 보냈으니 그 누구보다도 학교에 대한 애착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오랜 시절 저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늘 감사했으며 그들에게 무엇인가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난 교수시절 돌이켜보면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이번 정년퇴임에 즈음하여 전자공학과에 4,000만원의 장학기금을 기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기부 이유를 들었다.


또한, "사실 저의 지난 40년의 교수생활은 제 집사람의 헌신적이 뒤 바라지와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로 가능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제 아내는 저의 전부였고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지난 2013년 어느 날 수많은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고 갑자기 하늘나라로 먼저 갔습니다. 독실한 그리스챤이었던 집사람이 그리울 때 마다 평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기를 즐거워했던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장학기금은 집사람같이 중병으로 고생하는 가족이 있는 학생들을 돕는다는 취지 하에서 집사람 이름을 따서 ‘박현숙 장학금’이라고 해서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장학금이 중환자 가족으로 인해 학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쓰여지길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박현숙 장학금 명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 동안 정년퇴직 직전까지도 강의 및 연구에만 몰두해서 아직 구체적인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늘 하고 싶었던 성악을 정식으로 공부해서 교회에서 찬양도 하고 독창회도 갖고 싶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퇴직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늘 하고 싶었던 성악을 정식으로 공부해서 교회에서 찬양도 하고 독창회도 갖고 싶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퇴직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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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수 교수 본인 소개: 

 

? 저는 지난 1981 3월 광운대 전자과 교수로 첫 부임한 이후, 지난 40년의 제 인생 전부를 광운과 함께 보내고 올해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교수의 길로 인도하시고, 교수로써 맡은 바 소명을 온전히 다 끝마치게 하시고 이제 영광스러운 은퇴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과 찬양을 드리고자 합니다.

? 사실 저에게 교수란 선택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적 천직이었고, 그 믿음으로 지난 40년 동안 대학교수직을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교수의 꿈과 목표를 세우고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결과 대학입학 후 7년 만에 대학교수라는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 1970년초 대학입학 당시는 한국전자산업이 막 발전을 시작하던 시기였고 오늘날 IT 세계최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를 바라볼 때, 그 당시 교수가 되어 국가미래적으로 필요한 전자공학도를 배출하여 국가 전자산업발전에 기여하라는 소명적 천직 이였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돌이켜보면 그 많은 학과 중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것도, 졸업 후 국내 전자공학의 효시인 광운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과 만남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 전자공학과에 교수로 부임한 이후 지난 40년간 약 8,000여명의 전자공학도를 가르쳐 배출시켰으며 특히, 차세대 신기술인 3차원 영상미디어, 3DTV, 홀로그램 휴먼미디어 기술 등을 전공한 전문연구인력인 200명의 석, 박사를 배출시켜 국가산업 발전에 나름 많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우리대학의 이승현, 손채봉 교수를 비롯하여 을지대학교의 권영만 교수, 원광대학교의 강훈종 교수, 김포대학교의 이재수, 서춘원 교수, 동아방송대학교의 조병철 교수, 동서울대학교의 이우상, 방승철 교수, 인하공업대학교 고정환 교수, 중국 대련대학교 장묘 교수 등 17명의 제자들이 현재 국내외 14개 대학에서 교수로써 후진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 40년간 120여개의 중대형 국책 및 산학연구과제를 수행했고 그 연구결과를 SCI 국제저널에 180, 국제학술대회에 278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국내외 학술지에 총 1,019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249건의 국내외 특허도 출원했습니다.

? 또한, 지난 2000년에 ‘()3차원방송영상학회 초대회장을, 2009년에 차세대 3D융합산업 컨소시엄 초대회장을 그리고, 2010년에는 국내최대 IT학회인 ‘()한국통신학회’ 26대 회장을 각각 역임했고, ‘International Workshop on 3D Imaging Technology’  10여개의 국내외학술대회를 창설, 개최함으로써 국내외 정보통신 산업 및 학문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공군 정책자문위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책자문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국제저널인 ‘3D Research (Springer)’  ‘ICT Express (Elsevier)’ 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지난 40년간의 학술활동을 통해 ‘()대한전자공학회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LG학술대상’, ‘광운대학교 광운학술대상 제 1’, ‘()해동문화재단 해동학술대상  20여건의 국내외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도에는 국가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2012년도에는 국민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각각 수상했습니다. 

? 교내보직 활동으로는 1992년 전자공학과 학과장으로써 정말로 어려운 시기에 조무성 총장님을 도와 국내최초의 전국대학 전자공학과 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비공식 전국대학 3)’를 받았으며 그 이후, 대학본부의 핵심보직인 기획관리실장을 4번에 걸쳐 역임하면서 학교발전을 위해 많은 봉사를 했습니다. 1994년도에는 윤성천 총장님을 도와 혼란기의 우리대학의 안정화에 노력했고, 1997년에는 박영식 총장님을 도와 교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학 행정의 체계화  ‘VISION 2007 광운 21세기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국내최초의 전국대학종합평가에서 우수대학에 선정됐고, 1999년도에는 100억원의 재원마련을 통해 참빛관을 기공하게 되었고, 이어서 정보통신창업지원센터사업, 중기청 창업보육센터사업 등 많은 국가사업 수주를 통해 대학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도에는 김기영 총장님을 도와 광운의 위기 분석과 구체적인 광운 발전 실행계획을 수립하여 당시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59위였던 우리대학의 순위를 20위권으로 도약시키는데 기여했으며, 2010년에는 대덕전자 김정식회장으로부터 해동학술정보실을 기증받기도 했습니다.